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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싱가포르 역사(18)

by 톡톡톡 레이나 2025. 4. 11.

일본점령기_전시경제

태평양전쟁과 일본점령으로 싱가포르의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경제를 지탱하던 유럽과 미국의 관계가 단절되고 전시 경제체제 아래서 자급자족이 불가피하게 되자 싱가포르의 중계무역은 파국을 맞게 되었다. 더구나 경제의 자급자족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싱가포르의 상황에서 전시경제의 강요는 당연하게 비참한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일본 점령기의 싱가포르는 식량난에 의한 기아와 질병, 그리고 대량 실업의 시기였다.

 

 일본은 싱가포르를 중계무역항에서 산업화된 자급자족의 항구도시로 전환시키려고 시도했다. 따라서 싱가포르에서는 처음으로 자체 소비를 위한 비누, 치약과 칫솔, 선풍기, 타이어, 농기구 등이 생산되었다. 그러나 물자는 부족했고 물가는 치솟았으며, 극심한 식량난 속에서 각 가정의 정원은 물론이고 대로변의 화단에도 꽃 대신 야채가 심어졌다. 전시산업은 별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이 시기는 싱가포르에서 자급자족의 가능성을 시험한 귀중한 시기가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본 점령 시기의 싱가포르 경제구도는 일본의 독점자본에 의한 전시 독점체제가 되었다. 전전에 이미 말라야와 싱가포르에 깊숙하게 진출했던 미쓰이나 미쓰비시 같은 일본의 독점 재벌들은 주요 국가산업을 장악했다. 쌀은 미쓰비시상사가, 설탕과 소금은 미쓰이물산이 독점했다. 고무의 수집과 판매, 얼음공장과 벽돌공장, 해운과 육운 등도 일본기업의 수중에 들어갔다. 유통과 소매 부분에는 조합이란 신디케이트가 부족한 생필품의 가격 안정과 배급을 구실로 특정물품에 대한 독점권을 행사했다. 조합의 결성으로 물가가 치솟고 암시장이 기승을 부렸다. 이러한 독점체제는 영국의 자유방임 정책과는 대조적인 것이었다. 당연하게 이전에 유럽인과 중국인들이 담당했던 역할이 일본 자본가들의 수중으로 넘어갔다. 일본과 만주국등 일본 점령지에서 건너 온 이권옥이란 이름의 중계업자들이 기존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중국인들의 새로운 경쟁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 두 경쟁자들은 모두 공동의 이익제고에 이견이 있을 수 없었으므로 중국인들의 기존 유통망과 일본인들의 조합과 협력을 통해서 험난한 전시경제를 극복할 수 있었다.

일본점령기의 유산

일본의 동남아 점령은 유럽인들이 만든 백인불패의 신화를 깨뜨렸으며, 이는 유럽인들에 의해서 다시 회복되지 못했다. 싱가포르에서 영국의 패배는 대영제국에 의존하여 다인종 이민사회를 만들었던 싱가포르로서는 더욱 심각한 것이었다. 영국이 자신들이 통치하는 지역의 거주민들을 보호할 능력이 없음을 확인한 싱가포르의 이민사회는 자신들이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자각하게 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정치적 투쟁과 경제적인 행동통일을 벌일 태세를 갖추게 되었다.

 

 인종사회마다 나름대로 정치적 자각이 이루어졌다. 말레이인들이 전시동안 토착인으로서 정치적 청제성을 자각하게 되었고, 중국인과 인도인들도 현지정치에 보다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전 보다 많은 중국인들이 싱가포르를 자신들의 영주지로 여기게 되었으며, 자신들이 태어나서 살고 있는 싱가포르에서 마땅히 지분을 가져야 한다고 느꼈다. 중국인들은 점차 그 지분을 요구하게 되었고 정치로부터 배제되어 있는 현실에 적극 저항하기 시작했다. 인도인들 또한 보다 정착 의지를 보이며 현재 정치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기 시작하였다. 전문직 종사자와 사무직 직업인이 주류를 이루고 있던 인도인들은 전후의 말레이민주연합과 싱가포르노동당에서 활발한 정치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한편 공산주의자들은 전시 항일투쟁을 통해서 대중적인 신뢰를 회복하면서 전후 가장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부상하였다. 이들의 투쟁으로 인하여, 인종을 불문하고 싱가포르 노동자 계층의 정치적 자각이 두드러지게 부각되었다. 낮은 임금과 높은 물가, 열악한 주택환경, 치솟는 실업률 속에서 공산주의 세력은 쉽게 노동자 계층에 접근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부두 노동자와 운수노동자 등은 전후 격렬한 파업을 전개하였는데, 이러한 노동운동은 급변하는 싱가포르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일본이 싱가포르를 점령했던 시기는 독립 후 싱가포르를 이끌어 나간 세대에게 깊은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위기상황을 경험하면서 싱가포르는 외세가 아닌 싱가포르의 자력에 의존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자각하였고, 다시 식민지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결의를 다지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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